구양수의 삼다(三多)

글짓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구양수의 삼다(三多)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구양수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짓느냐는 물음에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이라 답한 것인데 이것이 세월이 흐르며 다독다작다상량(多讀多作多商量,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으로 뜻이 조금 바뀌었다. 아무튼 삼다는 글쓰기로 고민하는 후학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지침으로 여겨져왔다.

지침이 있다 해서 모두가 성취를 얻는 건 아니다. 다독다작다상량은 글쓰기 실력을 기르는데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이를 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다 세부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수많은 책들이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서점에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책들이 수도 없이 늘어섰다. 글의 종류에 따라 자기소개서나 보고서, 논술시험답안부터 기사쓰기와 편지쓰기, 소설이나 평론을 쓰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글쓰기 교수법이 넘쳐난다. 바야흐로 교수법의 홍수시대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면 실망하기 일쑤다. 상당수가 삼다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원론적인 내용에 머물거나 글의 구조와 원리를 분석하는데 치중해서 실제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애써 읽어도 읽기 전보다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런 글쓰기를 방해하고 스스로의 실력에 자괴감만 느끼게 한다.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려워 고민하는 독자에게 유용한 책은 손에 꼽는 게 현실이다.

지난 4월 생각의길이 펴낸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간만에 등장한 제대로 된 글쓰기 지침서다. 데뷔작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한국현대사> 등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작가 유시민의 30년 글쓰기 경험이 그대로 묻어난 역작이다. 책은 본인이 과거에 쓴 글부터 헌법재판소 결정문, 블로그 상품평,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문 등을 사례로 들며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를 차근차근 논증한다. 책 전체가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적절한 조언을 하고 있고 개별 문장들도 저자 스스로 주장한 좋은 문장과 합치한다는 점에서 잘 쓰여진 책이다.

나는 글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문학적인(또는 예술적인) 글과 논리적인(또는 공학적인) 글이다. 문학 글쓰기는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무언가를 지어내는 상상력,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리 글쓰기는 훨씬 덜하다. 논리 글쓰기는 문학 글쓰기보다 재능의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만약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업무에 필요한 글이나 취미로 쓰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능 없음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잘되지 않는다고 해서 조상과 유전자를 탓할 것도 없다.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거나 포기할 이유는 더욱 없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서두부터 논리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를 구분하고 이 책이 남과 소통하기 위한 논리적 글쓰기를 대상으로 한다고 밝힌다. 이후 논리적 글쓰기를 하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효과를 보았던 실천적 방법이기에 의미가 크다. 첫 문장을 쓰는 것부터, 못난 글을 알아보는 법, 주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놓는 법, 우리 글을 활용하는 법, 전략적으로 독서하는 법 등 실용적인 방법론이 가득하다. 그가 말하는 글쓰기 연습의 첫 걸음은 발췌 요약이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그 내용을 잘 요약하는 것만으로도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를 겁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함은 물론이다. 글쓰기란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이를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우러러본다. 글쓰기 실력을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지성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글이 글쓴이의 지능, 지식, 지성, 가치관,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표현할 내면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는 게 많아야 한다. 다양한 어휘와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멋진 문장을 구사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써야 잘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표현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내면에 쌓아야 하고, 그것을 실감 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문장을 멋지게 쓰면 ‘글재주’를 인정받을 수 있다. ‘글재주’가 있으면 ‘써야 해서 쓰는 글’을 어느 정도 잘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글재주’만으로 공감을 일으키거나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풍부한 어휘와 좋은 문장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도 조언한다. 그는 글쓰기 역량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독서목록까지 제공하고 있는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박경리의 <토지> 등이 그것이다. 저자 스스로가 이 책들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하니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이 책들 외에도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바로쓰기>가 바른 글쓰기를 위한 백신으로 추천되었다. 더 나은 글쓰기를 돕지는 못해도 나쁜 글쓰기를 막아줄 수 있는 책이란 이유다.

유시민의 글은 이렇다 할 수사 없이 건조한 단문으로 이뤄진 게 특징이다. 때로 딱딱하고 멋 없다는 인상도 받지만 그보다는 쉽고 명확하다는 장점이 크다. 독자와의 합리적 소통을 위한 글쓰기로는 제격이다. 오랜 기간 글로써 독자와 소통했고 더 좋은 글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온 저자의 노하우가 그대로 담겼다는 점에서 이 책 만한 지침서도 없을 것이다. 유시민이란 사람의 공정하고 날카로운 기질이 그대로 읽힌다는 점은 또 다른 재미다.

저자가 학생운동에 매진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여성 활동가 A의 일화가 각별히 인상적이어서 옮겨 적는다. 집회 유인물에 대한 이야기지만 대중과 소통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읽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큰 집회에 가면 여러 단체와 조직이 유인물 수십 종을 배포합니다. 집회에 오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유인물을 한 무더기 받지요. 적합한 자리를 찾으면 그 유인물을 대충 살펴보고 어떤 것은 깔고 앉아요. 어떤 건 흘낏 보고 버립니다. 몇 줄만 읽고는 얼른 접어서 가방이나 주머니에 집어넣기도 하고, 차분히 다 읽은 다음에 접어서 넣기도 해요.

나는 우리가 만든 유인물을 받은 사람을 몰래 따라가서 헤아립니다. 내가 관찰한 사람 중에 몇 명이 우리 것을 다 읽은 다음에 접어서 넣느냐? 그걸 보는 겁니다. 그게 많을수록 잘 쓴 겁니다. 대충 보고 나서 깔고 앉는 건 야당에서 만든 두꺼운 아트지 홍보물인 경우가 많아요. 흘낏 보고 버리는 것은 상투적이라 그래요. 제목만 보고 접어서 넣는 건 무서워서 그런 겁니다. 나중에 사람 없는 데에서 보려는 거죠. 무섭지 않고 공감이 가는 유인물은 그 자리에서 다 읽어요. 그리고 아는 사람한테 보여주어야겠다 생각하면 접어서 넣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유인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어제 열 사람을 추적 조사했는데, 우리 것이 빈도가 제일 높았어요. 계속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제목에 ‘애국 시민 여러분’이라고 쓴 것을 두고 프티부르주아 냄새가 난다고 위에서 비판했는데, 그럼 애국 민중이라고 해야 하나요? ‘애국’이란 말이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고 해서 쓰지 말아야 하나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버리고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말로 우리 주장을 하면 그게 잘 먹히겠어요? (90-91p)

이 부분을 읽을 때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대체 어떤 글을 쓰고 있었던가. 소통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그저 쏟아내기만 한 건 아니었을까. 옳다. 글은 읽는 사람이 있을 때에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누누이 말한다. 글쓰기는 소통이며 공감이라고.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라고.

비슷한 시기에 호주 시드니 시내에서 무장인질극이 벌어졌다. 이슬람테러조직을 추종하는 이란 출신 남자가 카페를 점거해 손님과 직원 수십 명을 인질로 잡았다. 경찰은 무장인질극을 진압했지만 카페 매니저와 여성 변호사가 범인의 총에 맞아 숨지는 비극까지 막지는 못했다. 매니저는 총을 빼앗으려고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변호사는 임신한 친구를 보호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이 긴급 뉴스로 인질극을 현장 중계하던 시각, 시드니 시내 전차에서 어떤 여자가 조용히 머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었다. 모슬렘 여성들이 쓰는 헤자브였다. 그가 역에 내렸을 때 백인 여자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시 헤자브를 쓰세요. 내가 당신과 함께 걸어갈게요.” 모슬렘 여인은 백인 여자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다가 혼자서 역을 떠났다. 두려움에 떠는 이웃을 위로했던 백인 여자는 그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썼다. (262p)

백인 여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유시민 씨의 책에 소개되었고 그로부터 또 다른 독자를 만났다. 좋은 글은 읽는 이를 설득하고 공감하게 하며 그를 통해 세상을 바꾼다. 이것이 글이 가진 힘이다. 우리가 더 좋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며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더 좋은 글을 쓸 것이다.